과학-원소&주기율표

초중원소 합성과 가속기 발전사

think83654 2025. 8. 29. 13:47

초중원소 연구는 단순히 새로운 원소를 찾는 행위가 아니라, 인류가 물질의 근본 구조를 탐험하는 여정과도 같다. 우리가 주기율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118번 오가네손까지의 원소 중 상당수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고, 인공적으로 합성된 결과물이다. 이들은 대체로 불안정하여 짧은 순간에 붕괴하지만, 그 순간은 인류 과학이 원자핵의 구조와 물리 법칙을 시험하는 중요한 무대가 된다. 이러한 합성 실험을 가능하게 한 핵심 도구는 바로 입자가속기이다. 가속기는 단순한 실험 장비를 넘어, 현대 물리학과 화학의 성취를 상징하는 인류 지성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본 글에서는 초중원소 합성의 원리와 함께, 가속기 발전의 역사, 그리고 이를 통해 가능해진 초중원소 연구의 궤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초중원소 합성과 가속기 발전사
초중원소 합성과 가속기 발전사

초중원소 합성의 기본 원리

초중원소는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류는 인공적으로 원자핵을 충돌시켜 새로운 원소를 합성해야 한다. 그 원리는 간단히 말하면 핵융합(nuclear fusion) 이다. 가벼운 원자핵을 고속으로 가속시켜 무거운 표적 원자핵에 충돌시키고, 이들이 융합하여 새로운 원자번호를 가진 핵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 단순한 그림보다 훨씬 복잡하다.

첫째, 원자핵은 양성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성자들은 모두 양전하를 띤다. 따라서 두 핵을 가까이 접근시키려면 강력한 전기적 반발력, 즉 쿨롱 장벽(Coulomb barrier) 을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입자에 수억 전자볼트(eV)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부여해야 하는데, 이때 가속기가 필요하다.

둘째, 설령 두 핵이 융합에 성공하더라도, 새로운 초중원소 핵은 즉시 붕괴할 위험이 크다. 양성자가 지나치게 많으면 쿨롱 반발이 내부 결합력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정된 초중원소 합성은 매우 낮은 확률로만 일어난다. 실제로 연구자들은 수개월에 걸쳐 실험을 진행해야 단 몇 개의 초중원소 원자만을 검출할 수 있다.

셋째, 초중원소 합성에서 중요한 전략은 적절한 표적 원소와 투사체 원소 선택이다. 예를 들어 118번 오가네손은 캘리포늄(Cf, 98번) 표적에 칼슘-48 이온을 충돌시켜 얻었다. 이와 같은 조합은 핵이 안정적으로 결합할 확률을 높인다. 따라서 합성 실험은 물리학뿐 아니라 화학, 재료과학, 핵공학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는 영역이다.

가속기의 탄생과 초기 발전

입자가속기의 개념은 20세기 초반, 원자의 구조가 밝혀지고 핵반응 연구가 본격화되던 시기에 등장했다. 1930년대, 어니스트 로렌스가 고안한 사이클로트론(cyclotron) 은 최초의 실용적 가속기였다. 이 장치는 원형 궤도를 따라 입자를 회전시키며 점점 높은 에너지를 부여할 수 있었고, 이후 다양한 핵반응 실험에 활용되었다.

초기 가속기의 성과 중 하나는 테크네튬(43번 원소) 과 같은 인공 원소의 발견이었다. 이는 주기율표의 빈칸을 채우는 사건이자, 인류가 처음으로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원소를 실험실에서 만든 쾌거였다. 그러나 원자번호가 100 이상인 초중원소 합성을 위해서는 사이클로트론보다 훨씬 강력한 장치가 필요했다.

1950~1960년대에 들어서며, 선형가속기(linear accelerator)중이온가속기(heavy-ion accelerator) 가 개발되었다. 이 장비들은 중간 원자번호를 가진 이온을 고속으로 가속시켜, 무거운 표적 원소에 충돌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이 시기에 캘리포늄, 아인슈타이늄, 페르뮴 등 100번대 초우라늄 원소들이 차례로 합성되었다.

초중원소 합성- 냉융합 vs 열융합 전략

1970~1990년대 초중원소 합성의 핵심 논쟁은 냉융합(cold fusion)열융합(hot fusion) 전략의 대립이었다.

냉융합은 비교적 낮은 에너지로 충돌을 일으켜, 생성된 원소가 많은 에너지를 잃지 않고 안정될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독일 다름슈타트의 GSI 연구소는 이 방법을 사용해 107번 보륨(Bh), 108번 하슘(Hs), 109번 마이트너륨(Mt) 등을 합성했다.

반면 열융합은 더 높은 에너지로 충돌을 시도하여 새로운 원소를 만들 확률 자체를 높이는 방식이다. 러시아 두브나 합동핵연구소(JINR)와 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연구소가 이 방식을 채택했다. 특히 러시아는 칼슘-48을 투사체로 사용하여 안정성이 높은 초중원소 합성에 성공했다. 114번 플레로븀, 116번 리버모륨, 118번 오가네손 등이 이 전략의 산물이다.

이 대립은 단순한 실험 기법의 차이를 넘어, 국제적 경쟁으로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전략은 상호 보완적이었다. 냉융합은 원소 발견의 ‘정밀한 접근’을 가능하게 했고, 열융합은 주기율표의 상한을 밀어붙이는 ‘개척자’ 역할을 했다.

현대 가속기와 초중원소 연구의 최전선

오늘날 초중원소 연구의 중심 무대는 일본의 RIKEN, 러시아의 JINR, 독일의 GSI 등 세계적 연구소들이다. 이들은 대규모 중이온가속기를 운영하며, 원자번호 120 이상을 목표로 한 새로운 합성 실험에 도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 RIKEN은 RI Beam Factory 라는 첨단 장비를 통해 초중원소 113번 니호늄(Nh)을 합성하고, IUPAC의 공식 승인을 받는 데 성공했다. 이는 아시아 최초의 원소 발견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가졌다.

독일 GSI는 슈퍼중이온가속기(Super-FRS)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이는 앞으로 안정의 섬에 가까운 원소 탐구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러시아 두브나 연구소 역시 새로운 중이온 가속기를 도입하여 119번과 120번 원소의 합성을 시도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제는 단순히 새로운 원소 번호를 추가하는 것을 넘어, 안정의 섬(Island of Stability) 이라 불리는 영역을 탐색하는 것이 목표라는 점이다. 이는 특정 초중원소가 상대적으로 긴 반감기를 가질 수 있다는 이론적 예측에 기반한다. 만약 반감기가 몇 분 혹은 몇 시간에 달하는 초중원소가 발견된다면, 실험적 화학 연구가 가능해지고 주기율표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다.

초중원소 연구의 윤리적·철학적 논의

가속기의 발전과 초중원소 연구는 인류 과학의 위대한 도전이지만, 동시에 몇 가지 논란도 안고 있다.

첫째, 자원과 비용의 문제다. 대형 가속기 프로젝트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예산이 소요된다. 그 결과 초중원소 연구는 일부 선진국의 특권이 되고, 과학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둘째, 핵기술의 군사적 전용 가능성이다. 초중원소 합성에서 사용하는 기술은 고에너지 핵물리학과 맞닿아 있으며, 이는 핵무기 개발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연구 결과가 군사적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국제적 감시와 윤리적 규범이 필요하다.

셋째, 과학의 목적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다. 반감기가 밀리초에 불과한 원소를 합성하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러한 연구가 인류 전체에 어떤 실질적 이익을 주는가? 일부는 이를 ‘과학적 사치’라 비판하지만, 다른 일부는 지식 탐구 자체가 인류의 본질적 가치라고 주장한다. 결국 초중원소 연구는 실용적 효용을 넘어, 인류가 자연의 근본 원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지적 욕망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결론

초중원소 합성과 가속기 발전의 역사는, 인류가 원자핵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를 보여준다. 20세기 초 사이클로트론에서 출발한 작은 실험은, 오늘날 대륙을 초월한 국제 협력과 경쟁의 무대로 확장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단순히 주기율표에 새로운 칸을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얻었다.

가속기는 인류 과학의 도구일 뿐 아니라, 우리 문명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상징이다. 초중원소 연구는 그 자체로 미래의 산업적 응용을 약속하지는 않지만, 인간이 ‘알고자 하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가장 순수한 과학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19번, 120번, 그리고 그 이후의 원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가속기의 발전은 그 가능성을 열어갈 것이다. 결국 초중원소 합성은 단순한 발견의 나열이 아니라, 인류 지성이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며 확장해 나가는 서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