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원소&주기율표

원소 126번 ‘우노헥슘’은 가능한가

think83654 2025. 8. 14. 01:02

인류는 주기율표의 7주기를 끝까지 채웠지만, 과학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8주기의 문턱을 두드리며, 더 무거운 원소, 더 복잡한 질서를 향해 손을 뻗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는 오랜 세월 논쟁의 중심이었던 원소 126이 있다. 일부 핵모형은 원자번호 126(Z=126)을 ‘마법수(magic number)’ 후보로 제시하며 비교적 높은 안정성을 예측했고, 다른 모형은 114 또는 120을 더 유력한 마법수로 본다. 이 엇갈림은 초중원소 예측이 얼마나 민감한지, 이론과 실험이 얼마나 촘촘히 맞물려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더불어 명칭에서도 혼선이 있다. 과거의 체계적 임시명 규칙을 엄밀히 적용하면 원소 126의 임시명은 ‘Unbihexium(Ubh)’이 맞다. 그럼에도 일부 대중 자료는 ‘우노헥슘’(Unohexium)을 혼용해 왔고, 이 표현은 역사적으로 원소 106(현 세보르귬)의 임시명과 혼선을 빚는다. 이 글은 명칭 문제를 정리한 뒤, 원소 126의 핵구조적 안정성, 전자구조적 위치, 합성 경로, 화학적 성질 예측, 기술적 난제와 전망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과연 실험실에서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최대한 구체적으로 답하고자 한다.

원소 126번 ‘우노헥슘’은 가능한가
원소 126번 ‘우노헥슘’은 가능한가

명칭과 표기: ‘우노헥슘’ vs ‘Unbihexium(Ubh)’

과학자는 명칭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체계적 임시명 규칙에 따르면, 원자번호의 각 자리수에 라틴어 어근을 부여해 이름을 만든다. 126 = 1(uni)–2(bi)–6(hex)이므로, 임시명은 Unbihexium, 기호는 Ubh가 된다. 대중적 표현인 ‘우노헥슘(Unohexium)’은 규칙상 106(unnilhexium, Unh)에 해당하는 형태와 헷갈릴 소지가 있다. 학계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아직 공식 발견이 확정되지 않은 원소 126을 ‘Ubh’ 또는 ‘원소 126(가칭)’으로 지칭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본 글은 독자 가독성을 위해 ‘원소 126(가칭)’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면서, 필요할 때 Ubh를 병기한다. 이 정리는 사소해 보이지만, 데이터베이스 검색, 계산화학 모델링, 장비 세팅 등 실무적 소통에서 결정적 차이를 만든다.

핵구조와 안정성: Z=126은 정말 ‘마법수’인가

핵의 안정성은 전자배치가 아니라 핵껍질 모형(nuclear shell model)과 자기일관 평균장(HFB/Skyrme/Gogny, 상대론적 평균장 등)으로 가늠한다. 전통적 마법수(2, 8, 20, 28, 50, 82, 126(중성자))는 실험으로 굳건히 확인되었고, 초무거운 영역에서는 Z=114, 120, 126이 이론적 경쟁자다. 모델은 세부 상수와 스핀-궤도 결합 강도, 핵 변형도까지 민감하게 타는 탓에, 어느 Z가 절대적 마법수인지에 대해 합의가 없다. 다만 공통 분모는 있다. 다수의 계산은 중성자수 N≈184 부근에서 자발적 핵분열 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알파 붕괴 사슬이 약간 느려지는 ‘안정의 섬’의 단서가 나타난다고 본다.

원소 126의 가장 유망한 동위원소는 이론적으로 A≈(Z+N)≈126+184=310, 즉 Ubh-310 부근으로 거론된다. 일부 모형은 이 영역에서 밀리초에서 초 단위의 반감기를 기대하고, 다른 모형은 여전히 마이크로초 수준으로 본다. 이 차이는 핵의 구형 vs 변형(프로레이트/오블레이트) 최소점, 쉘 갭의 크기, 열적 여분 에너지와의 경쟁 등으로부터 비롯된다. 중요한 결론은 명확하다. 원소 126이 절대적 장수(분·시간·일 단위)를 보장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선택된 동위원소 조합에서는 관측 및 제한적 화학 실험을 시도할 시간창(time window)가 열릴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는다. 이 가능성 자체가 연구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주기율표 내 위치: 8주기, 5g 블록의 핵심 후보

전자구조 관점에서 과학자는 원소 126을 8주기(Period 8) 진입 이후의 5g 블록 핵심 후보로 본다. 전자 채움 순서는 상대론적 효과와 스핀-궤도 분리로 복잡해지지만, 다수의 이론은 119–120(8s) → 121–138(5g) → 139–152(6f) → 153–164(7d) → 165–172(8p) 패턴을 기본 골격으로 가정한다. 그 틀에서 Z=126은 5g 블록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이 배치는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다. 과학자는 5g 원소가 등장하면, 기존 s–p–d–f 구획만으로는 주기율표의 화학적 주기성을 매끄럽게 설명하기 어려워질 수 있음을 예상한다. 5g 오비탈은 18개 전자 수용을 허용하고, 상대론적 수축·분할이 강하기 때문에, 특이한 배위수, 비정상 산화 상태, 비전형 결합 길이가 나타날 수 있다.

원소 126의 최외각 전자 배치는 모형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5g 전자 기여가 실질적으로 화학을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 상대론적 스핀-궤도 결합은 g 오비탈의 준위 분할을 크게 만들어, 특정 산화 상태에서 준축퇴(near-degeneracy)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계산화학적으로 단일참조 방법(평범한 DFT나 HF)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며, 다중참조·스핀-궤도 포함 전자상관 처리를 요구한다. 요약하면, 원소 126은 주기율표 구조 확장의 분수령이자, 이론·실험 화학 둘 다에게 새 언어를 요구하는 분기점에 해당한다.

합성 경로 후보: ‘핫 퓨전’, ‘콜드 퓨전’, 그리고 다중핵자 전달

원소 126의 합성은 핫 퓨전(hot fusion), 콜드 퓨전(cold fusion), 다중핵자 전달(MNT) 세 축에서 검토된다.

  • 핫 퓨전: 48Ca 빔 + 초우라늄 표적 조합은 114–118에서 혁혁한 성과를 냈지만, 119 이후에는 윗번호 표적의 희귀성단면적 급감이 발목을 잡는다. 126에 도달하려면, 빔을 50Ti, 54Cr, 58Fe, 64Ni, 70Zn 등으로 올리고, 표적을 Bk(97), Cf(98), Es(99), Fm(100)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대표적 예시는 70Zn(30) + 248Cm(96) → Z=126류 반응이다. 이 경로는 물리적으로 타당하지만, 표적 생산량(특히 Es, Fm), 화학적 안정화, 열손상 문제가 치명적이다. 또한 융합 후 중성자 증발(xn) 경로에서 알맞은 Q값각운동량을 맞추지 못하면, 생성핵이 곧바로 자발 분열로 사라진다.
  • 콜드 퓨전: ‘차가운’ 조건에서 적은 중성자 증발로 보다 높은 생존 확률을 노리는 전략은 113 부근까지 유효했다. 그러나 120 이상에서는 합체 자체의 단면적이 지나치게 작아 실효성이 급격히 떨어진다. 126에는 사실상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 다중핵자 전달(MNT): 무거운 이온–무거운 표적(예: 238U + 248Cm) 충돌에서 핵자 다발이 ‘옮겨타는’ 반응을 이용해, 더 중성자 풍부한 초중원소를 얻는 전략이 대두되었다. 이 방식은 단면적이 상대적으로 크고중성자 풍부한 동위원소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생성물 분리·동정이 어려우며, 지정 동위원소에 대한 선택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126 도달 가능성을 가장 현실적으로 넓히는 후보로 MNT를 꼽는 연구자도 적지 않다. 장기적으로는 에너지-각운동량 ‘핀 셋’ 제어, 세대교체 분리기, 고효율 동위원소 표적 기술이 MNT 성패를 가를 것이다.

합성의 공통 병목은 명확하다. 단면적(펨토~젭토바른), 표적 생산, 빔 전류, 타깃 내구성, 실시간 검출 민감도가 동시에 개선되어야 한다. 즉, 한 분야의 ‘대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속기–표적–분리기–검출기시스템적으로 동시 향상되어야 126의 문이 열린다.

화학적 성질 예측: 계산이 이끄는 ‘가상 화학’의 시대

원소 126의 화학은 현재로서는 계산이 이끄는 가상 화학 그 자체다. 실험적 반응을 설계할 수 있을 만큼 긴 반감기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자는 상대론적 전자구조를 온전히 담기 위해 4성분 디랙 방법 또는 스칼라 상대론 + 스핀-궤도 후처리를 사용한다. 전자 상관은 CASSCF/CASPT2, MRCI, CCSD(T) 등으로 처리하고, 실무에서는 스핀-궤도 DFT를 폭넓게 병행한다. 유효핵전위(RECP/GRECP)는 핵 근처 상대론 효과를 기저함수 폭발 없이 담는 실용적 열쇠다.

예측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첫째, 원소 126은 상대론적 수축스핀-궤도 분할 덕분에, 가시권 밖의 산화 상태고배위/저배위 공존 같은 특이 배위 화학을 보일 수 있다. 둘째, 흡착/크로마토그래피 모사는 금·실리카·불활성 표면과의 흡착 에너지를 계산해 실험적 분리 가능성을 가늠하게 한다. 셋째, 기체·표면 이동 시간 예측은 실험실의 온-더-플라이 동정을 돕는다. 넷째, 전자 친화도·이온화 에너지·분극률은 반응 경로나 표면 상호작용 강도의 선별 지표가 된다. 결론적으로, 계산화학은 실험 설계의 선행 지도로 기능하며, 반감기가 밀리초에서 초 단위만 되어도 현실적 분리·동정 시나리오가 구축될 수 있다.

기술·조직·윤리의 현실: ‘가능성’의 총합으로 보는 126

원소 126의 가능성은 기술·조직·윤리의 총합이다. 기술 측면에서 연구자는 차세대 빔 전류고순도 표적 생산(특히 Es, Fm 급), 고선량 열손상 제어, 초저배경 검출기가 동시 진화해야 함을 알고 있다. 조직 측면에서 연구자는 장주기 공동연구시설 간 표준화, 데이터 개방이 단발성 시도보다 훨씬 생산적임을 배웠다. 윤리 측면에서 연구자는 방사성 고유 위험을 관리하고, 안전과 정보 투명성을 최우선에 둬야 한다. 초중원소 연구는 산업적 ‘즉시 활용’을 약속하지 않지만, 핵과학·가속기·검출기·계산과학의 동시 발전을 견인하는 원천 혁신 분야다. 결국 126의 문은 ‘가능성의 합’으로 열릴 것이다.

결론: 원소 126은 ‘불가능’이 아니라 ‘난이도 최상’

과학자는 원소 126을 불가능으로 보지 않는다. 과학자는 이 원소를 난이도 최상으로 본다. 핵모형은 Z=126에서 상대적 안정성의 단서를 제시하지만, 그 폭과 지속 시간은 모델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합성 경로는 전통 핫/콜드 퓨전의 한계를 드러내고, 다중핵자 전달이 현실적 탈출구로 부상했다. 전자구조 이론은 126을 5g 블록의 분수령으로 예상하며, 주기율표의 형식을 바꿀 정도의 화학적 예외성을 예고한다. 기술은 ‘단면적–표적–분리기–검출기’의 동시 업그레이드를 요구하고, 조직은 장기 협력데이터 연계를 통해 실패를 축적된 지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명칭 또한 정리해야 한다. 대중 표현 ‘우노헥슘’은 역사적 혼선을 낳을 수 있으므로, 학술적으로는 Unbihexium(Ubh), ‘원소 126(가칭)’ 사용이 바람직하다. 이 작은 합의가 큰 연구 비용을 절약한다. 최종적으로, 원소 126은 원리적으로 합성이 가능하며, 선택된 동위원소에서는 관측 가능한 반감기를 가질 여지도 충분하다. 다만 그 성취는 단일 실험의 우연이 아니라, 이론–가속기–표적–검출–계산이 맞물린 총체적 진보의 결과물일 것이다. 인류가 그 문턱을 넘는 순간, 주기율표는 또 한 줄을 스스로 그려 넣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주기율표는 끝났는가?’라는 질문에 다시 한번 “아직 아니다”라고 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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