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항상 경계를 넓혀왔다. 주기율표도 예외는 아니다. 19세기 말 멘델레예프가 원소의 성질과 원자량의 주기성을 바탕으로 설계한 이 도표는 단순한 과학적 도식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압축해놓은 상징적인 구조다. 처음에는 빈칸이 많았고, 일부 원소는 존재조차 불확실했지만, 주기율표는 시간이 지나며 하나씩 그 빈칸을 채워갔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원자번호 118번 오가네손(Og)의 공식 승인으로 7주기 주기율표는 완성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주기율표는 이제 끝난 것일까? 아니면, 아직 우리가 도달하지 못한 주기, 존재하지 않는 원소, 혹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물질 구조가 남아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단순히 학문적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과학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철학적 질문에 가깝다. 주기율표가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실험이 이루어졌는가? 아니면 인간의 기술이 아직 그 ‘끝’에 도달하지 못한 것뿐인가?
이 글에서는 주기율표가 과연 종결 가능한 구조인지, 더 이상 확장되지 않을 것인지, 그리고 그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핵물리학, 양자역학, 실험기술, 이론화학의 관점에서 깊이 있게 분석한다. 동시에 주기율표의 미래가 단순히 원소의 추가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과학 패러다임의 문을 여는 과정임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까지의 주기율표: 7주기의 완성과 한계
현재의 주기율표는 118개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우라늄(92번)까지는 자연계에서 존재하는 원소다. 이후의 원소들, 즉 넵투늄(93번)부터 오가네손(118번)까지는 모두 인공적으로 합성된 초우라늄 원소이며, 그 대부분은 수명이 매우 짧고 방사성이 강한 특성을 갖는다.
2016년 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IUPAC)은 113번(니호늄), 114번(플레로븀), 115번(모스코븀), 117번(테네신), 118번(오가네손)의 존재를 공식 인정하며 주기율표의 7주기를 완성했다. 이로써 모든 블록(s, p, d, f)의 전자배치가 이론과 일치한 상태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118번 이후, 즉 119번 이상부터는 아직 아무런 실험적 성공 사례도 존재하지 않는다. 119번 원소는 8주기의 첫 번째 원소로 예상되며, 이론적으로는 8s¹의 전자배치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 존재를 확인하는 실험은 반복적으로 실패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현실적으로 주기율표는 118번에서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론도 제기되고 있다.
물리적 한계: 초중원소가 가지는 불안정성
주기율표 확장의 가장 큰 장애물은 핵의 불안정성이다. 원자번호가 증가할수록 양성자 수는 늘어나고, 양성자 간의 전기적 반발력도 커진다. 이 반발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중성자가 필요하지만, 일정 비율을 넘어서면 오히려 중성자 과잉으로 인한 불안정성이 발생한다.
또한, 핵이 너무 무거워지면 자발적 핵분열(spontaneous fission)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초중원소의 경우, 붕괴 반응이 매우 빠르게 일어나며, 일부 원소는 수 밀리초 단위의 반감기만을 갖는다. 이는 존재를 입증하기도 전에 사라진다는 뜻이며, 합성과 동시에 검출을 해내야만 실험적으로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물리적 관점에서 볼 때, 주기율표는 이론적으로 무한히 확장될 수 있더라도, 핵의 안정성 한계가 사실상 주기율표의 ‘끝’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118번을 넘어설수록 생성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며, 고출력 가속기와 극도로 정밀한 검출 시스템 없이는 확인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양자역학적 시사점과 상대론적 효과의 영향
전자 배치의 관점에서 주기율표는 양자역학적 규칙을 따르는 구조다. 그러나 원자번호가 커질수록 전자들은 핵 주위를 더 빠르게 회전하게 되고, 이때 상대론적 효과가 나타난다. 상대론적 효과는 전자의 질량 증가와 궤도 수축을 유발하여, 전자 에너지 준위의 순서가 바뀌거나 예상과 다른 배치를 갖게 만든다.
예를 들어, 오가네손은 18족 비활성기체로 분류되지만, 계산화학적 모델에 따르면 기체 상태가 아닌 고체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전자 배치와 결합 에너지에 영향을 미치는 상대론적 효과 때문이며, 초중원소일수록 이러한 예외가 더 자주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주기율표가 기존처럼 명확한 주기성과 족 분류에 기반하여 확장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5g 오비탈의 등장은 전자 배치의 복잡성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키며, 이는 새로운 주기율표의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과학적 도전과 실험의 지속: ‘끝났음’을 입증할 수 있는가?
주기율표가 정말 ‘끝났다’고 말하려면, 그 확장 가능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논리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직 우리가 도달하지 못했을 뿐이지, 기술과 실험의 발전으로 새로운 원소가 나중에 합성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80~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14번 이후의 원소는 실험적 불가능으로 여겨졌지만, 러시아 두브나 합동핵연구소(JINR)와 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의 협업을 통해 오가네손까지 합성에 성공했다. 이는 주기율표가 현실의 기술 수준에 따라 종결된 듯 보이지만, 과학의 진보에 따라 다시 열리는 영역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현재도 일본 RIKEN, 독일 GSI,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프랑스 GANIL 등 세계 주요 연구기관은 119번, 120번 원소 합성에 도전 중이며, 보다 정교한 빔 기술, 타깃 안정화, 검출기 민감도 개선 등의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결론: 주기율표는 완성되었지만, 끝나지 않았다
주기율표는 118번까지의 원소로 형태상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 ‘완성’은 단지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가능한 것의 정점일 뿐이며, 과학의 근본 원리로서의 주기율표는 여전히 확장 가능성과 미지의 구조를 내포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8주기 이후의 원소는 극도로 불안정하고, 합성조차 어렵지만, 이는 곧 새로운 이론의 시험 무대이자, 기술의 진보를 요구하는 과학의 최전선이다. 주기율표는 정적인 구조물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해석되고 다시 설계되는 동적인 과학 체계다. 우리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자리들이 존재하며, 그 자리들이 결국 채워진다면, 주기율표는 다시 ‘완성’이라는 이름으로 재정의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기율표는 끝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기율표는 과학이 멈추지 않는 한, 끝날 수 없는 구조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실험실 안에서, 슈퍼컴퓨터 속에서, 그리고 과학자들의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다음 줄을 기다리고 있는 살아 있는 과학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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